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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왕
1600년대 영국은 유럽의 강국 중에서 삼십 년 전쟁에 관여하지 않은 유일한 나라였다. 영국인은 운이 좋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도 혼란스러운 시대를 보냈다. 1215년 영국의 존왕은 자신의 후계자들은 귀족들과 사전에 합의하지 않고는 아무일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마그나 카르타(대헌장)에서 엄숙히 맹세했다.
영국 왕들은 400년 동안이나 이를 준수해 왔다. 하지만 참수형을 당한 메리 스튜어트의 손자인 찰스 1세는 이를 지키려 하지 않았다. 그는 귀족이나 의회에 모인 시민들의 의견에 귀를 막은 채 제멋대로 통치를 했다. 게다가 흥청망청 돈쓰기를 무척이나 좋아했다.(스코틀랜드 내전 개입)
영국 국민들이 이를 용납했을 리가 없다. 영국에는 아주 엄격하고 신앙심이 투철한 개신교도들이 많이 살았는데, 이들은 청결한 사람들이란 뜻에서 청교도(puritan)라 불렸다. 일체의 사치나 호의호식을 혐오한 청도교도들은 곧 찰스 1세에게도 대항하기 시작했다. 청교도들의 우두머리는 크롬웰이라는 가난한 귀족으로, 비범할 만큼 신앙심이 깊고 용감한 전사였으며 의지가 무척 강하고 마음먹은 일에서는 가차 없는 사람이었다. 크롬웰은 엄격한 훈련을 쌓고 신앙심도 깊은 군대와 함께 오랫동안 싸운 끝에 찰스 1세를 붙잡아 군사 법정에 세울 수 있었다. 찰스 1세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권력을 남용한 죄로 사형 선고를 받았으며 1649년에 참수되었다. 그 후로 영국의 지배자는 크롬웰이었다. 하지만 왕이 아니라 자칭 ‘국가의 수호자’(호국경)로서 영국을 통치했다. 크롬웰은 이름뿐이 아닌 실제의 수호자였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엘리자베스 여왕이 시작한 모든 것을 계승하는 것, 즉 아메리카의 영국 식민지나 인도의 무역소, 유능한 함대와 대규모 해상무역을 발전시키는 것이었다. 크롬웰은 이 모든 방면에서 영국의 세력을 강화시키는 한편, 이웃 나라 네덜란드의 세력을 최대한 약화시켰다.
그가 죽고 왕권이 다시 회복되었을 무렵에는(1688년 이후부터는 네덜란드계 왕가가 영국을 다스렸다) 영국을 통치하는 것이 더 이상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영국은 계속해서 번영을 이루었다. 그리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마그나 카르타(대헌장)의 약속을 파기한 왕은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출처 곰브리치 세계사 p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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